8편. 윤석열 정부: 고금리와 규제 완화의 줄다리기, 연착륙인가 빙하기인가

글: 나침반

어두운 회색조의 거친 질감 벽과 흐릿하게 보이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한 정사각형 썸네일입니다. 이미지 상단 왼쪽 구석에 흰색 고딕체로 '윤석열 정부'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아래, 팽팽하게 당겨진 굵은 삼밧줄의 클로즈업이 가로지릅니다. 밧줄 위로 왼쪽에는 '고금리', 오른쪽에는 '규제 완화'라는 텍스트가 흰색 고딕체로 각각 배치되어 긴장감을 표현합니다. 밧줄 아래 중앙에는 가장 크고 단단한 흰색 고딕체로 '줄다리기'라고 적혀 있으며, 가장 하단에 작은 흰색 고딕체로 '연착륙인가 빙하기인가'라는 문구가 배치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고 무겁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열기구, '거시경제의 중력'을 만나다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역대 가장 비싸고 뜨겁게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시장의 룰을 완전히 뒤엎는 거대한 외부 충격이 찾아옵니다.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발 '초고속 금리 인상'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를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배경에는 제로(0)에 가까운 초저금리가 있었습니다. 돈의 가치가 쓰레기가 되니, 빚을 내서라도 실물 자산인 아파트를 사는 게 남는 장사였죠. 그런데 1~2% 하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순식간에 5~6%를 돌파해 버렸습니다. 한 달에 이자로 100만 원 내던 영끌족이 하루아침에 300만 원을 내게 생긴 겁니다. 금리가 오르자 예적금으로 돈이 몰려갔고, 부동산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매수 심리는 실종됐고, 집값은 수억 원씩 뚝뚝 떨어지는 '빙하기'가 도래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 급격한 추락을 막고 경제의 숨통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대'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PF 위기: 조감도만 보고 빌려준 돈의 역습

고금리가 부동산 시장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가장 먼저 곪아 터진 곳은 바로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시장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했던 이 PF 위기를 이해하는 것이 이 시기 시장의 핵심입니다.

  • 부동산 PF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건설사가 "여기 기가 막힌 아파트를 지을 테니 조감도와 사업 계획서만 보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겁니다. 아파트를 짓고 분양해서 번 돈으로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는 약속이죠. 호황기에는 아파트가 지어지기도 전에 완판되니 은행도, 증권사도 앞다투어 수천억 원씩 돈을 빌려줬습니다.

  • 돈맥경화의 공포: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니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지 않습니다. 미분양이 속출하자 건설사들은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 시장 경색은, 건설사 하나의 부도를 넘어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 증권사 등 제2금융권 전체의 연쇄 부도 공포(뱅크런)로 번졌습니다. 집값이 너무 빨리 떨어지면(경착륙)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1.3 부동산 대책: 추락하는 비행기의 짐을 내던지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초, 전임 정부가 겹겹이 쌓아 올렸던 규제를 단숨에 허물어버리는 이른바 '1.3 대책'을 전격 발표합니다.

  • 전방위 규제 해제: 강남 3구와 용산을 제외한 서울 전역과 수도권의 규제 지역을 모조리 해제했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취득세와 양도세 중과를 완화하고, 분양권 전매 제한도 대폭 풀었습니다.

  • 집값을 띄우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책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투기꾼들의 집값을 떠받쳐준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속내는 집값을 다시 올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파트값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직행하면 PF 부실로 나라 경제가 망하니, 규제를 풀어서 돈 있는 사람들이 미분양 아파트라도 사게 만들어 '바닥(하한선)'을 다지려는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른바 '연착륙(Soft Landing)'을 위한 생명줄이었던 셈입니다.

특례보금자리론과 정책 금융: 인공호흡기를 달다

규제를 풀어도 금리가 워낙 높아 사람들이 대출을 받지 못하자, 정부는 2023년에 약 40조 원 규모의 '특례보금자리론'을 시장에 투입합니다.

  • DSR 규제의 우회: 당시 시장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강력한 대출 규제에 묶여 있었습니다. 내 월급의 4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지 못하게 막아둔 제도입니다. 그런데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 원 이하의 집을 살 때 소득을 따지지 않고 고정 금리로 최대 5억 원까지 대출을 해주는 파격적인 상품이었습니다.

  • 절반의 성공과 부작용: 이 정책 자금은 무주택 2030 세대들의 닫힌 지갑을 열게 만들며, 얼어붙었던 주택 거래량을 단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급락하던 집값은 하락을 멈추고 잠시 반등(데드캣 바운스)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또 부추긴다"는 비판과 함께 가계부채를 다시 폭발적으로 늘리는 부작용을 낳았고, 결국 정부는 몇 달 뒤 대출 문턱을 다시 높이는 냉온탕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극심한 양극화: '강남 불패'와 '지방 소멸'의 디커플링

윤석열 정부 임기 후반기(2025~2026)에 접어들며 나타난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전례 없이 심각한 '양극화(Polarization)'입니다.

과거에는 서울 집값이 오르면 수도권이 오르고, 이어 지방까지 온기가 퍼지는 낙수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고 대출 한도가 줄어들자,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제한된 총알(자본)을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과녁에만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 강남과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 등 핵심지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는 신고가를 경신하며 부활했지만, 서울 외곽의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이나 지방의 아파트들은 여전히 악성 미분양에 시달리며 가격이 회복되지 않는 철저한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고착화되었습니다. 전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움직이던 시대가 끝나고, 철저한 계급장과 입지 위주로 시장이 쪼개져 버린 것입니다.

금리를 이기는 규제 완화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전임 정부의 징벌적 수요 억제책을 정상화하고, PF 위기라는 폭탄을 관리하며 시장의 경착륙을 막아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규제의 대못을 뽑아 시장을 시장답게 작동하도록 돌려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뼈아픕니다. 정부가 아무리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 규제를 풀어줘도(규제 완화), 결국 거대한 돈의 값어치(고금리)와 거시경제의 흐름 앞에서는 시장이 극적으로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진정한 조물주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아니라, 미국 연준 의장과 한국은행 총재라는 우스갯소리가 완벽한 진리로 증명된 셈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걸 보여줬다면, 윤석열 정부는 "금리를 이기는 정책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확인시켜 준 시기였습니다.

자, 여기서 경제 상식 하나 짧게 덧붙이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 키워드인 '연착륙(Soft Landing)'은 원래 항공 용어로, 비행기가 활주로에 충격 없이 부드럽게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경제학에서는 펄펄 끓던 경기가 급격한 침체(실업률 급증, 기업 도산) 없이 서서히 진정되며 안정기에 접어드는 것을 의미하죠. 정부는 늘 연착륙을 원하지만, 시장은 종종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경착륙(Hard Landing)의 공포를 주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1편부터 8편까지 장장 30년에 걸친 '정권별 정책의 역사'를 다루며 냄비의 물 온도를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다음 9편부터는 판이 완전히 바뀝니다. 정책이나 금리보다 훨씬 무섭고 피할 수 없는 쓰나미, 바로 '인구 구조의 변화'입니다. 아파트 살 사람이 물리적으로 줄어드는 '인구 절벽' 앞에서도 강남 불패의 신화는 유지될 수 있을까요? 9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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