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이명박 정부: 보금자리주택과 반값 아파트, 글로벌 금융위기 속 실용주의

글: 나침반

차분한 분위기의 도심 전경 사진 위에 '이명박 정부', '보금자리주택', '글로벌 금융위기', '실용주의 정책 분석'이라는 문구가 정갈한 흰색 고딕체로 가독성 있게 배치된 정사각형 썸네일 이미지.

뜨거운 냄비에 쏟아진 얼음물, 그리고 실용주의의 등장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2008~2013)의 부동산 시장은 시작부터 전임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임기 내내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집값은 2008년 가을, 미국에서 터진 '리먼 브러더스 사태(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신용 경색으로 돈줄이 마르자, 하루가 다르게 오르던 강남 아파트값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답게 철저한 '시장주의'와 '실용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징벌적 세금과 규제로 시장을 통제하려 했던 전임 정부의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규제만 푼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부동산 역사상 유례없는 파격적인 '공급 폭탄'을 시장 한가운데 투하하게 되는데, 이번 5편에서는 그 핵심인 '보금자리주택'이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흔들어 놓았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규제의 대못 뽑기: 세금은 깎아주고 거래는 살리고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전임 정부가 박아둔 이른바 '부동산 규제의 대못'들을 하나씩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이 얼어붙어 거래가 실종되자, 경제의 핏줄을 다시 돌게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부유세 논란을 빚었던 종부세의 기준을 공시가격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세율도 대폭 낮췄습니다. 사실상 종부세를 무력화하여 다주택자와 자산가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 양도소득세 완화와 투기지역 해제: 집을 팔 때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의 문턱을 낮추고,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전국의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을 전면 해제했습니다.

마치 한겨울에 보일러를 끄고 창문까지 열어둔 방에, 다시 보일러를 켜고 창문을 닫아 온기를 돌게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의 한파가 워낙 거세다 보니, 이런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장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보금자리주택의 등장: 강남 한복판에 '반값 아파트'를 짓다

이명박 정부 부동산 정책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바로 2009년 발표된 '보금자리주택'입니다. 이는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국가가 직접 수도권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저렴한 공공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 그린벨트 해제라는 비장의 카드: 서울 강남의 세곡동, 내곡동, 그리고 하남 미사, 고양 원흥 등 입지가 뛰어난 수도권 알짜배기 땅의 그린벨트를 과감하게 풀었습니다. 민간 건설사가 땅을 비싸게 사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국가가 싼 땅을 강제로 수용해 아파트를 올리니 분양가가 획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주변 시세의 '반값' 충격: 당시 강남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는 주변 민간 아파트 시세의 절반에서 6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말 그대로 '반값 아파트'가 시장에 쏟아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로또 당첨을 노리는 무주택자들의 청약 통장이 블랙홀처럼 보금자리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 정책은 집값을 억누르는 데 있어 세금이나 대출 규제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입지 좋은 곳에 싸고 품질 좋은 새 아파트가 널려 있는데, 누가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낡은 민간 아파트를 사겠습니까?

민간 시장의 붕괴: 정부가 건설사의 숨통을 조이다

하지만 모든 정책에는 명암이 존재합니다. 서민들에게는 꿈의 주택이었던 보금자리주택이, 역설적으로 민간 부동산 생태계를 파괴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 건설사들의 줄도산 위기: 정부가 원가 수준의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자, 이윤을 남겨야 하는 민간 건설사들은 도저히 가격 경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민간에서 짓는 아파트는 모조리 미분양 사태를 맞았고, 건설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 공급의 절벽을 잉태하다: 민간 건설사들이 아파트 짓기를 포기하면서 훗날 심각한 '공급 부족'이라는 불씨를 남기게 됩니다. 공공이 공급하는 물량만으로는 전체 시장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데, 민간의 공급 파이프라인이 꽉 막혀버린 것입니다. 이는 결국 다음 정권에서 집값이 다시 폭등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됩니다.

전세 대란의 서막: "집을 왜 사요? 전세 살며 기다리지"

보금자리주택이 낳은 또 다른 거대한 부작용은 바로 최악의 '전세 대란'이었습니다. 집값 하락과 반값 아파트라는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사람들의 심리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입니다.

  • 매수 심리의 실종: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지금 집을 사봤자 가격도 안 오르는데, 굳이 대출받아 집을 살 이유가 없다. 차라리 전세로 살면서 청약 가점을 쌓아 강남 반값 아파트에 당첨되는 게 훨씬 이득이다."

  • 전세가의 폭등: 집을 살 능력이 있는 사람들마저 매매를 포기하고 전세 시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없는데 전세로 살려는 사람만 넘쳐나니, 매매 가격은 떨어지는데 전세 가격은 미친 듯이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훗날 갭투자(전세를 끼고 적은 자본으로 집을 사는 행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토양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막강한 공공의 힘, 그러나 시장은 유기체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보금자리주택'이라는 강력한 공공 공급을 통해 장기적인 집값 하향 안정을 이끌어낸 점은 긍정적입니다. 비싼 식당 옆에 저렴한 국영 식당을 차려 시장 가격을 강제로 끌어내린 실용적인 접근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민간 생태계를 고사시키고 극심한 전세난을 유발했다는 뼈아픈 실책도 남겼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아서, 한쪽을 강하게 누르면 반드시 다른 쪽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서민을 위한 '반값'이라는 달콤한 정책이 결국 민간 공급 가뭄과 전세금 폭등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와 보금자리주택이 남긴 짙은 그림자를 짚어보았습니다.

반값 아파트만 기다리며 사람들이 집을 안 사고 전세로만 몰리니 전셋값이 매매가를 위협할 정도로 폭등해버렸죠. 이 골치 아픈 '전세 대란'과 꽁꽁 얼어붙은 주택 거래 시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다음 6편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이른바 '초노믹스'와 "이제 빚내서 집 사라"며 대출 규제마저 시원하게 풀어버린 부양책의 명암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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