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침반
중환자실에 실려 온 대한민국 경제, 그리고 '극약처방'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1998~2003)가 마주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초토화된 잿더미였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아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곳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앉았습니다. 시중 은행의 이자율은 연 20%를 훌쩍 넘어 30%에 육박했습니다. 은행에 돈을 가만히 넣어두기만 해도 원금의 3분의 1을 이자로 주는데, 굳이 대출 이자를 감당하면서 세금 내고 유지비 드는 부동산을 살 바보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부동산 가격은 끝을 모르고 폭락했습니다. 아파트를 반값에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고, 미분양 주택은 산더미처럼 쌓여갔습니다. 건설사들의 줄도산은 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국가 경제 전체의 목을 조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집값을 잡고 투기를 잡는 건 배부른 소리였고, 당장 건설 산업과 내수 경제의 숨통을 틔워 국가의 명줄을 이어가는 것이 지상 과제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중환자실에 실려 온 환자에게 스테로이드와 진통제를 한계치까지 투여한 것입니다. 이번 3편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 꺼내든 파격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종합 선물 세트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왔는지 상세히 해부해 보겠습니다.
분양권 전매 전면 허용: '피(Premium)'라는 신종 재테크의 탄생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주택 시장의 거래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1998년 단행된 **'분양권 전매 전면 허용'**입니다.
분양권 전매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티켓)'를 아파트가 다 지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웃돈을 받고 파는 행위입니다.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 놓고, 콘서트 날짜가 다가오기 전에 프리미엄을 붙여 중고 거래 사이트에 파는 '암표'와 정확히 같은 원리입니다.
규제의 빗장을 풀다: 과거에는 투기를 막기 위해 이 분양권 전매를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한번 청약에 당첨되면 아파트가 완공되어 내 이름으로 등기를 칠 때까지 무조건 보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미분양이 넘쳐나 건설사들이 망해나가자, 정부는 "아파트가 다 지어지기 전이라도, 중간에 누구한테든 팔아도 좋다"며 빗장을 풀어버렸습니다.
시장의 반응: 이 조치는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계약금만 낼 돈이 있으면 청약에 당첨된 후, 중도금이나 잔금을 치르기 전에 수천만 원의 웃돈(이른바 '피')을 받고 넘기는 '단타 매매'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적은 자본으로도 부동산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시중의 유동 자금이 분양 시장으로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신축 주택 양도소득세 한시적 면제: 부자들에게 던진 거대한 당근
분양권 전매 허용이 소액 투자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면, **'양도소득세 면제'**는 현금을 쥐고 있는 자산가들을 향한 정부의 노골적인 구애였습니다.
정부는 1998년과 1999년에 걸쳐 "지금 미분양된 신축 주택을 사면, 나중에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향후 5년 동안은 양도소득세를 단 한 푼도 걷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허들입니다. 1억 원을 벌어도 세금으로 절반을 떼어가면 매력도가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백화점으로 치면 "오늘 우리 백화점에서 안 팔리고 남은 재고 명품 가방을 사주시면, 나중에 중고로 비싸게 팔 때 생기는 차익에 대해 수수료를 전액 면제해 드리겠습니다"라고 국가가 보증을 선 것입니다.
이 조치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현금을 보유하고 있던 자산가들은 앞다투어 미분양 아파트를 쓸어 담았습니다. 당장은 나라를 구한 '애국자'였지만, 불과 몇 년 뒤 거시경제가 회복되고 집값이 폭등하자 이들은 양도세 한 푼 내지 않고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챙긴 '신흥 부동산 재벌'로 거듭나게 됩니다.
청약 1순위 자격 완화와 대출 규제 철폐: "누구나, 빚내서 집 사세요"
정부의 규제 철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택 청약 제도의 문턱을 확 낮춰버렸습니다.
가구주에서 세대원으로: 이전에는 무주택 세대주(가장의 역할)만 1순위 청약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완화하여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세대원이어도 청약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각자의 이름으로 청약 통장을 만들어 청약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재당첨 제한 폐지: 한 번 당첨되면 몇 년간 다시 청약할 수 없었던 규제도 없앴습니다. 당첨되고 피를 받고 판 다음, 내일 또 다른 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는 무한 반복의 장이 열렸습니다.
대출 규제의 해제: 돈이 없는 사람들도 집을 살 수 있도록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대폭 늘려주었습니다. 은행들은 앞다투어 대출 상품을 쏟아냈고, 사람들은 적은 내 돈과 많은 은행 돈을 합쳐 부동산 쇼핑에 나섰습니다.
외국인 부동산 취득 전면 개방: 달러를 향한 절박함
IMF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은 나라 곳간에 '달러'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국내 자본만으로는 무너지는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기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1998년 6월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법을 개정합니다.
이전까지 외국인은 한국의 땅이나 건물을 사는 것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 외국인은 군사시설 보호구역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국인과 똑같이 부동산을 사고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국의 거대 자본(달러)이 한국의 헐값 부동산을 사들이며 외환보유고를 채워주기를 바란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 시기 외국계 펀드들은 서울 도심의 대형 빌딩들을 헐값에 매입해 훗날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떠나며 '먹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거시 경제의 회복과 벤처 붐: 꺼진 불씨에 기름을 붓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규제 완화가 시장의 체질을 '투자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꿔놓고 있을 무렵, 거시 경제 환경도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을 기점으로 한국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IMF의 그늘에서 벗어났습니다. 살인적이었던 고금리는 점차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IT 벤처 붐이 일면서 시중에 다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내수 진작을 위해 정부가 신용카드 발급을 장려하면서 시중의 유동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규제는 전부 풀려있는데, 금리는 낮아지고, 사람들 주머니에 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엄청난 돈들이 어디로 향했을까요? 당연히 가장 확실한 수익이 보장된 곳, 정부가 "세금 안 낼 테니 사세요"라고 판을 깔아준 부동산 시장이었습니다. 특히 2001년 말부터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심상치 않은 폭등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기 위해 마신 바닷물, 그리고 남겨진 청구서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규제 완화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분양권 전매 허용, 양도세 면제, 청약 자격 완화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부양책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빈사 상태에 빠졌던 건설 경기를 살리고 국가 경제를 IMF의 수렁에서 건져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너무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마시면 당장은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아도 결국엔 더 큰 갈증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생존을 위해 모든 빗장을 풀어버린 부양책들은 시장에 어마어마한 투기적 수요를 양산했고, 이는 거대한 잉여 유동성과 맞물려 통제 불가능한 '집값 폭등'이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말기에 타오르기 시작한 이 거대한 불길은, 고스란히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는 무거운 청구서가 되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띄워 위기를 탈출한 대가는 과연 누가, 어떻게 치러야 했을까요?
규제를 풀어서 나라를 살리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시중에 풀린 돈들이 다시 강남 아파트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죠.
그렇다면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 노무현 정부는 활활 타오르는 이 거대한 투기판의 불길을 잡기 위해 어떤 소방 호스를 끌고 왔을까요? 다음 편은 종부세라는 전례 없는 세금 폭탄과 '버블세븐'이라는 낙인찍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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