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박근혜 정부: "빚내서 집 사라?", 초노믹스와 부동산 부양책의 명암

글: 나침반

해 질 녘의 차분한 도시 전경을 배경으로 한 정사각형 썸네일입니다. 중앙 상단에 깔끔하고 단단한 고딕 서체로 '박근혜 정부: 초노믹스와 부동산 부양책의 명암'이라는 제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제목 바로 아래에는 동일한 서체로 '빚내서 집 사라?'라는 문구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블루와 그레이 톤을 사용하며 여백의 미를 살린 구성으로 전문가의 신뢰감과 여유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매매 실종과 전세 대란,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2013~2017)가 마주한 부동산 시장의 첫인상은 '지독한 무기력증'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집값은 이제 끝났다,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는 인식이 깊게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굳이 취등록세와 재산세를 내가며 무리해서 집을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 결과 주택 매매 거래는 바닥을 기었고, 모든 수요가 전세 시장으로만 몰려들었습니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셋값만 미친 듯이 오르는 기현상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70%, 80%를 넘어 심지어 90%에 육박하는 아파트들이 속출했습니다. 건설 경기가 멈추면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업체, 공인중개사, 가전제품 시장 등 내수 경제 전체가 도미노처럼 멈춰 섭니다. 박근혜 정부의 지상 과제는 단 하나, 얼어붙은 사람들의 매수 심리를 녹여 '집을 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초노믹스와 금융 규제 완화: "우리가 돈 빌려줄 테니, 제발 집 좀 사세요"

2014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이른바 '초노믹스(Cho-nomics)'라 불리는 강력한 거시경제 부양책이 가동됩니다. 그 핵심은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게끔 댐의 수문을 활짝 열어버린 것입니다.

  • LTV와 DTI의 파격적 완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강력한 대출 규제인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각각 70%와 60%로 단일화하여 대폭 완화했습니다.

  • 대출 문턱 낮추기: 쉽게 말해, 5억 원짜리 집을 살 때 예전에는 내 돈이 최소 2억 5천만 원은 있어야 했다면, 이제는 1억 5천만 원만 있어도 은행에서 3억 5천만 원을 빌려 집을 살 수 있게 해 준 겁니다.

백화점에서 지갑을 닫은 손님들에게 "한도 넉넉한 신용카드를 발급해 드릴 테니, 일단 사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고르시라"고 정부가 앞장서서 등을 떠민 격입니다. 이 조치는 "빚내서 집 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단기적으로 전세 시장에 머물던 사람들을 매매 시장으로 끌어내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부동산 3법 통과: 건설사와 재건축 시장에 던진 거대한 당근

금융 규제를 풀어 수요자들의 지갑을 열었다면, 이제는 멈춰버린 주택 공급의 시동을 걸 차례였습니다. 정부는 2014년 말, 이른바 '부동산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며 민간 건설 시장에 거대한 당근을 던집니다.

  •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 민간 택지에서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를 정부가 억누르던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습니다. 아파트를 비싸게 팔 수 있게 되자, 이윤이 남지 않아 사업을 접었던 건설사들이 다시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재건축으로 얻는 이익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했던 제도를 유예시켜 주었습니다.

  • 재건축 조합원 3주택 허용: 재건축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조합원에게 새 아파트를 최대 3채까지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세 가지 법안은 잠들어 있던 강남 재건축 시장을 단숨에 깨우는 강력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낡은 아파트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돌변했고, 건설사들은 밀어내기식으로 엄청난 물량의 아파트를 분양 시장에 쏟아냈습니다.

사상 초유의 1%대 저금리 시대: 돈의 가치가 녹아내리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완화에 불을 붙인 것은 거시 경제의 환경, 즉 '금리'였습니다. 2015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1%대로 인하했습니다. 초저금리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 전세 제도의 위기: 은행에 전세보증금을 맡겨도 이자가 몇 푼 안 나오자, 집주인들은 전세를 월세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중에 전세 매물은 더욱 귀해졌고, 전셋값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 기회비용의 역전: 반대로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대출 이자는 엄청나게 싸졌습니다.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매달 비싼 월세를 내거나 전세자금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니, 차라리 싼 이자로 주택담보대출을 듬뿍 받아 집을 아예 사버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 되는 구조가 완성된 것입니다.

'갭투자'의 폭발적 증가: 적은 돈으로 집을 쇼핑하는 시대

높은 전세가율, 규제 완화, 그리고 초저금리라는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맞물리면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는 '갭투자'라는 거대한 광풍이 불어닥칩니다.

  • 지렛대(Leverage)의 마법: 매매가 5억 원짜리 아파트의 전세가가 4억 5천만 원이라면,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Gap)인 단돈 5천만 원만 있으면 그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무이자로 빌리는 사금융의 형태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 다주택자의 양산: 대출 규제마저 풀려 있었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조금만 있는 사람들은 5천만 원, 1억 원을 들고 수도권과 지방의 아파트 수십 채를 쇼핑하듯 쓸어 담았습니다. 이 갭투자는 주택 거래량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집값을 단기간에 밀어 올리는 가장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꽁꽁 언 경제를 녹인 불쏘시개, 그러나 남겨진 폭탄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목적 달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얼어붙어 있던 주택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었고,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침체된 내수 경제도 간신히 숨통이 트였습니다. 미분양 무덤이었던 시장에 청약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는 '가계부채의 폭발적인 증가'라는 무서운 대가를 담보로 한 것이었습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시그널에 반응해 수많은 국민들이 막대한 은행 빚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갭투자 광풍은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집값 폭등의 튼튼한 장작불을 지피는 꼴이 되었습니다. 당장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래의 수요와 유동성을 한 번에 끌어다 쓴 이 아슬아슬한 부양책은, 2017년 정권 교체와 함께 다음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크고 무거운 시한폭탄이 되어버렸습니다.


꽁꽁 얼었던 시장에 규제 완화와 저금리라는 불쏘시개를 던져 활활 타오르게 만든 박근혜 정부 시절의 이야기를 짚어봤습니다.

이렇게 대출을 잔뜩 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바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는 다시 한번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역대 가장 많은 횟수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게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집값은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섭게 폭등하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냅니다.

다음 7편에서는 임대차 3법과 핀셋 규제가 어떻게 시장의 공급망을 틀어막고 집값을 우주로 쏘아 올렸는지, 그 아프고도 복잡한 메커니즘을 다뤄보겠습니다. 시장을 이기려는 정책이 오히려 시장의 역린을 어떻게 건드렸는지 기대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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